이글은 about 어바웃…에 대하여
김종선 작가의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김종선작가는 중앙대 졸업 후 13년을 방송과 함께해왔다.그동안 TV<멋진 만남><기분좋은 밤><좋은 친구들>등과
Radio <책마을 산책><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라디오><텐텐클럽><기쁜 우리 젊은 날><스위트 뮤직박스>등의 작가로 활동하였다
현재<박소현의 러브게임>의 메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운 용하에 대하여
2010년 6월 30일 용하가 떠난 날이다.
‘한류스타 박용하, 자택에서 숨져’ 로 시작되는 TV속보를 처음 봤을 땐 눈물도
안 나왔다. 장례식장에 찾아가 사진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 목놓아 통곡을
하는 그의 친구들 모습을 모두 다 목격한 순간까지도 제대로 울지 못했다.
넋이 반쯤 쑥 빠져나간 채로, 며칠간 세상이 떠들어대는 ‘박용하’ 에 대한
이야기를 멍하게 듣고만 있었다. 여기가 어디이고 저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 꽤 오랫동안 실감할 수 없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용하가 이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 어딘가로 혼이 되어 떠나갔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용하는 자존심 세고 의리 있고 책임감 강하고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두 어깨에 묵직한 돌덩이를 올려놓고 사는 것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속으로만 안쓰러워했지, 대 한류스타 인생에 굳이 나까지 나서서 위로해주고
토닥여주고 하는 건 오버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그렇게 해줄 걸 그랬다. 그리 외롭게 떠나버릴 결심을 하는 동안,
따뜻하게 어깨 한번 툭툭 토닥여주지 못했던 것이 한스럽다.
쿡쿡 쑤시는 통증이 가시질 않아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껏
그리워하지도 못하겠다.
대본을 손에 쥔 채 길게 심호흡을 하던 옆모습이 떠오르나. 용하는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는 작은 소년이라도 된 것처럼 상기돼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계속 물을 마셨던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시그널
음악이 시작되고, 온에어에 불이 들어오자 마이크에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박용하의 텐텐클럽, 박용하입니다.”
2004년 5월 4일, 박용하의 텐텐클럽이 처음으로 방송되던 밤이었다.
첫 방송이라 잔뜩 굳어 있는 DJ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메인작가인 나는
두 시간내내 용하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누나, 다음엔 뭐하면 돼요?”
“누나, 사연은 이렇게 읽으면 돼요? 분위기 괜찮나?”
“누나, 이 노래 진짜 좋지 않아요? 밤에 들으면 완전 취해.”
음악이 나갈 때마다 다음 순서를 체크하고, 이미 두세 번 읽어본 사연을
또 줄을 쳐가며 연습했다. 중간 중간 음악에 취해 사색에 잠기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온 정성과 진심을 다해 생애 첫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다.
그전엔 별 호감도 관심도 없었던 배우 박용하와 함께했던 그 최초의 두 시간은,
한 번 봤을 뿐인데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그림처럼 선명하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용하가 처음 메모리얼파크에 왔을때....
처음 용하쉼터의 모습을 촬영했을때의 모습...
49제때
100일재때 일본팬들이 보내온 팬레터...
100일재때 추모인파...
추운겨울 눈에 덮인 용하쉼터
그리고 다시 봄...
1주기때....
1주기가 끝나고 ....
1년 반, 계절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용하는 밤마다 참 행복해했다. 막 한류스타의
반열에 올라섰을 때라 일본을 오가는 고된 스케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라디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만큼은 늘 금방 세수를 한 것처럼
말간 얼굴이었다. 드라마나 TV쇼에서는 본 적이 없는 완전히 무장 해제된
미소였다.
어디서도 보인 적 없는 속내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곳, 누군가를
위로하며 스스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라디오 스튜디오는
용하에게 그렇게 각별한 곳이었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방송을
하던 날, 용하가 종이 위에 끼적끼적 뭔가를 적어왔다. 직접 쓴 마지막 인사였다.
“누나, 마지막 인사 내가 써봤는데 좀 봐주라. 고칠 데 있음 고쳐주고.”
멋진 미사여구 같은 건 보태지 않았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도 진.심. 하나면 될 거라 믿었다.
열다섯 소년일 때부터 라디오를 참 열심히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여학생을 생각하면서 사연을 써본 적도 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은 음악들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친구한테 선물한 적도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대학을 가고 직업은 뭘 갖게 될까, 수많은 고민들을 떠올리면서 밤마다 참 많은 시간을 라디오와 함께했습니다. (중략)
자라서 방송을 하는 사람이 됐고, 연기자로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꼭 DJ가 돼서 마이크 앞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시험공부하며 밤새워 있을 누군가, 사는 고민에 잠 못 드는 사람들, 헤어져서 울고 있을 사람들, 그 사람들 가슴에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모자라고 서툴러서 마음처럼 잘 안 될 때가 잦았어요. 그렇지만 정말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 박용하와 함께한 일 년 반 동안, 어릴 적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잠시라도 따뜻한 위로를 받으셨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 언젠가는 마이크 앞에 꼭 다시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그 후로도 가끔씩 통화를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누나, 라디오 다시 하고 싶다. 누나 나중에 꼭 같이 하자!”
마지막 통화는 용하가 떠나기 사흘 전이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안부전화를 했고, 언제나처럼 낄낄거리며 수다를 몇 마디 떨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후
또 문자를 보내왔다.
‘누나, 덕분에 너무 오랜만에 웃었다…….’
요즘 뭐가 힘든가?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넘겨버렸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 다시전화해서 왜 그러느냐, 뭐가 힘드냐, 꼬치꼬치 캐묻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긴 세월을 함께 보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심야의 작은 방에 들어올 때마다 무거운 어깨를 잠시나마 허물어뜨리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동료로서, 더 좋은 인연이 돼주지 못했다는 게 이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그 친구가 떠난 후의 시간까지도 안쓰럽다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던 용하의 따뜻한 목소리가 남은 인생 내내
그리울 것 같다.
가장 최근 사진 이제 2주기가 다가오며 일본에서 오신 팬들(2012. 6. 15일)
아직도 끊이지 않는 그를향한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웃고있는 그가 보고싶네요...
용하 2주기를 앞에두고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about...이라는 책 속에서
용하에 관한 글을 이곳에 다시 올려봅니다.
다시한번 그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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