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아버님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셨죠.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어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 주세요. 꿈 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 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저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아내가 쓴 이 편지는
수백 년 동안 망자(亡者)와 함께 어두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장(移葬)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에 씌어진 이 편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심금을 울렸다.
장례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씌어진 편지는
죽은 남편에게 그 아내가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내는 지아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하고픈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종이가 다하자
모서리를 돌려 써내려 갔다.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자
아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적어 나갔다.
이 편지 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수습되었는데,
남편의 머리 맡에서 나온 유물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파악되지 않았지만
겉을 싸고 있던 한지를 찬찬히 벗겨 내자 미투리의 몸체가 드러났다.
조선시대에는 관속에 신발을 따로 넣는 경우가 드문데다
미투리를 삼은 재료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져
이 미투리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검사 결과 미투리의 재료는 머리카락으로 확인되었다.
왜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았는지 그 까닭은
신발을 싸고 있던 한지에서 밝혀졌다.
한지는 많이 훼손되어 글을 드문드문 읽을 수 있었다.
"내 머리 버혀... (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삼았다)"
그리고 끝에는 "이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는
내용들이 얼핏 얼핏 보였다.
편지를 쓸 당시 병석에 있던 남편이 다시 건강해져
이 미투리를 신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머리를 풀어 미투리를 삼았던 것이다.
아내의 헌신적인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자 그녀는 이 미투리를 남편과 함께 묻은 것이다.
애틋한 사랑을 기리기위해 만든 다리 월령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