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를 위한 에테르
김단혜
바람 냄새가 지독한 날 이었다
햇빛의 투명함이 오선지위를 통통 튀었다
맨발에 젤리슈즈를 신은 소녀들 사이로
거꾸로 매달린 투명한 비닐우산들이 비행하고
분주한 스텝들 사이로 한 사내가 보였다
검은 재킷에서 때때로 번쩍이는 햇빛 얼음 조각들
사내가 움직일 때마다 보오보오 빈 병 부는 소리가 들렸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번지는 저녁놀을 닮은 휘파람소리 같았다
모든 것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사랑이 그랬다
그의 시집 142쪽을 펼쳤다
밖으로 문을 잠그고 한 달 동안 A4 용지 80장에
보이지 않은 길을 따라 써내려 문장에선
실존과 생존을 오간 치열함이 만져졌다
바람을 담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설레는 현기증이다
그때부터였다
내 속에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났다
* 에테르(ether) -빛을 파동으로 생각했을 때 파동을 전파하는 가상적인 물질
독도의 동도 기상관제탑
함백산의 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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