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집을 읽는다
모든 기다림의 순간 시를 읽는다. 독 같은 여름, 예방주사를 맞듯이 시를 읽는다.
사내들은 이럴 때 사창가를 어슬렁거리나 보다
아무하고나 자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도 나의 생은 상처 속에서 찰랑거렸다
외출을 하면 전신에서 뚝뚝 물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활기가 있다고 했다
활기는 내 슬픔의 진액, 외로움이 내뿜는 윤기이다
사막에서 때로 뒷걸음으로 걸었다는 한 사내를 알고 있다
너무 외로워 자기 앞의 발자국을 보려고 그랬다고 한다.
문정희/ <꽃이 질 때> 부분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담을 넘는 나이로 꽃이 질 때
모든 것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사랑이 그랬다.
며칠째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앉아 머릿속에 글자들을 집어넣는다.
설렘도 떨림마저 없는 문장을 만나며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았다.
“내 심장이 문제야!” 외치는 순간, 시가 내게로 왔다.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옥죄어 오고 무릎에 힘이 빠졌다.
한 참을 도서관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쓴 시처럼 벼락 치듯 나를 흔들었다.
문정희 시인의『다산의 처녀』를 읽는 동안 몇 번인가 소리 내어 울었고,
행간의 여백에 드러눕고 싶었다. 책을 덮었다 다시 폈다를 반복했다.
시집을 손에 든 연극배우가 되었다.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여름 한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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