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알간 홍옥이고 싶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유치원에서 만난 지영이
엄마와 함께 훼밀리룩으로 입은 긴 플란넬 원피스에 잔잔하게 수 놓인
별꽃의 수줍음을 닮은 아이다. 당시 나는 지영이를 보는 재미로 출근 시간이 설레곤 했다.
급기야는 결혼은 하지 않아도 딸은 하나 갖고 싶을 만큼 지영이는 나를 사로잡았다.
지영이를 마지막으로 데려다 주고 원으로 돌아오려는데
지영이 엄마는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팔을 잡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내가 지영이네 집을 따라 들어간 건
노을빛을 닮은 나뭇잎에서 전해져오는 가슴앓이 같던 햇살 때문이었다.
지영이네 집은 입구부터 날 잡아놓은 새신부의 가슴처럼 나를 들뜨게 했다.
지점토로 만든 장미거울에 휴지꽂이며 화병에 꽂은 꽃까지 직접 만든 소품들로
온 집안을 프로방스풍의 예쁜 카페처럼 꾸며놓았다.
거실에는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남는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두 자매> 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더욱 나를 사로잡은 것은 집안 곳곳을 장식한 사과였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크리스탈 그릇이 있는 정물>을 연상시키는 그물 모양의 하얀 지점토 바구니에
핏빛 홍옥을 가득 담아 식탁 가운데 올려놓았다.
어찌나 반들거리게 닦았는지 그 반짝임에 다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저는 사과를 먹는 것보다 닦는 걸 좋아해요.”목소리에서 뽀드득 사과 닦는 소리가 들렸다.
가을이면 홍옥을 사서 반짝거리게 닦아 지점토 바구니에 담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한다고 했다.
커피에서도 홍옥의 새콤함이 묻어났다. 아니 지영이엄마가 입은 레이스 달린 앞치마에서도 사과의 향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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